기존 사업의 확장과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스타트업 모두 우리는 신사업이라 부르는데, 사실 이 둘의 생리는 완전히 다르다. 여기서 지금부터 사용하는 '신사업' 용어는 후자를 지칭함을 먼저 말해둔다.
대기업이나 중견 기업에서 미래 먹거리를 위한 신사업을 개척하고자 한다면, 처음에는 (예비) 창업자 한 명 외에 아무 것도 없을 수록 좋다. 처음에는 직원도 장소도 필요 없다. 제로베이스 신사업 개척에 무엇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방향이며, 이러한 방향을 잡기 위해 작은 실험들을 통해 가설을 검증해 나가야 한다.
가설 검증 단계는 아직 사업을 시작도 하지 않은 준비 단계이므로, 섣불리 자원을 낭비하면 안되고 가능한 아껴야 한다. 말했듯이 이 시기에 직원은 예비 창업자 한 명이면 족하다. 방향도 없는데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간다. 인사가 만사라고, 채용은 모든 기업이 가장 신중히 해야 할 행위이고, 신사업 조직은 더욱 그렇다. 특히 준비 단계에서는 사람을 뽑으면 안된다.
공간도 마찬가지. 신사업 한답시고 그럴싸한 공간부터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요즘에는 별도 사무 공간 조성도 필요 없다. 공용 오피스 입주하면 된다. 직원이 늘어날 수록 공용 오피스 가성비는 떨어지지만, 사업 준비 단계에서 예비 창업자 홀로 일하고 외부 인사 미팅 하기에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말하자면 공용 오피스는 이제 갓 독립한 청년이 거주할 풀옵션 신축 원룸 또는 여행자를 위한 호텔과 같다. 거실과 안방 딸린 아파트나 단독 주택 입주는 결혼과 출산 이후라도 늦지 않다.
그런데 일단 사람부터 뽑고 공간부터 꾸미는 경우가 많다. 이 둘은 악순환의 고리를 낳는다. 사람이 많으니 공간이 더 필요하고, 반대로 공간이 많으니 사람으로 체운다. 방향도 없는데 사공만 늘면 결국 배는 산으로 간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우량한 대기업 또는 중견 기업 조차 이런 식으로 신사업 개척을 시작하여 뭘 해보기도 전에 이미 망해 놓고 출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실수가 반복되는 이유는 일단 대기업과 중견 기업은 어느 정도 여유 자원이 있기 때문이며, 또한 이것이 이들이 기존 사업을 다른 시장 또는 카테고리로 확장하는 익숙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기존 사업 확장은 이렇게 하면 잘 되는 것이 맞다. 각 부서에서 가장 유능한 인원을 차출하여 밀어 붙이면 성과가 난다. 그런데 신사업 개척은 반대다. 말했듯이 아직 나아갈 방향 조차 명확하지 않으므로, 이런 상태에서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간다.
사람들은 우스개 소리로 월급 루팡 어쩌구 하며 월급 받으며 놀고 싶다 말을 하지만, 사실 월급 받으면서 일이 없으면 대부분 불안해 한다. 사무직 근로자는 필연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똑똑한 척을 하기 마련. 확실한 방향이 없는 상태로 이러한 직원들을 모아두면 머리를 맞대고 방향성을 강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똑똑함과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일을 벌인다. 그렇게 뭐라도 하다 보면 뭐라도 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조직과 제품은 결국 돈 먹는 하마가 되고 만다.
따라서, 모기업의 지원을 어느 정도 받고 시작하는 신사업 조직이라도, 사실상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스타트업 마인드로 접근해야 하며, 이러한 방식에 적합한 인재를 가려 뽑아 시작해야 한다. 주로 대기업에서 일하신 분들은 지원 없는 제로베이스 환경을 부담스러워한다. 말했듯이 지금껏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감을 보이더라도 결국 잘못 대처할 가능성이 크다.
신사업 개척에 정답은 없지만, 어떤 사업에나 통용되는 원칙은 바로 작게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지난 결정을 뒤엎기는 어렵다. 그 결정에 쏟은 노력과 정성에 비례해 포기하는 어려움은 커지기 마련. 작게 시작할 수록 실패 비용이 작아 기민한 방향 전환을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사람도 장소도 필요 없다는 말도 결국 작게 시작해야 한다는 말과 같은 맥락.
대기업 중견기업 같은 모기업의 지원 받는 신사업 사내 벤처 조직은 완전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스타트업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지점에서 시작하는 샘인데, 성공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앞서 말했듯이 이미 망해 놓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유리한 입지를 충분히 활용하려면, 먼저 스타트업 생리를 충분히 숙지하고, 기존에 익숙한 방식을 과감히 버려야(unlearn) 한다.
신사업 개척을 도모하려는 모기업 경영진은 지난 업적과 지위와 자존심 따위 내려놓고 처음부터 새로 배운다는 자세로 겸손히 임해야 한다. 본인이 직접 신사업을 개척할 것이 아니라면 믿고 맡길 인재를 찾아야 한다. 이러한 인재를 분별하기 위한 몇 가지 주안점이 있다. 첫 째는 당연히 스타트업 개척할 역량과 경험이 있냐는 것이고, 둘 째는 스스로 우쭐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자기 분수를 알고 신의를 지킬 자이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만나기도 어렵지만 알아보기도 어렵다. 기업가적 경영 역량은 희소할 뿐 아니라 대부분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만일 운 좋게도 믿고 맡길 역량과 성품을 갖춘 사람을 만난다면, 삼고초려의 자세로 모시고 마음을 다해 섬겨야 한다. 그리 한다면 그 사람도 신사업 성공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할 것이다. 이러한 수어지교는 성공적 신사업 개척의 초석이 될 것이다. 이는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결국은 운칠기삼. 매사 마찬가지겠지만 신사업 개척은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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