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객관화 능력


책임 회피식 유체이탈이 부정적 타자화라면, 자기 객관화는 긍정적 타자화. 긍정적 타자화란 내가 속한 조직, 자기가 하는 일,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타인 시선으로 냉철하게 돌아보는 시도. 자기 객관화 된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닌데, 자기 객관화 역량이 적어도 재기 불능 상태의 처참한 몰락은 막아주는 듯.

나의 입장과 생각이 보편 타당한 관점에서 옳은지 스스로 가늠하는 것을 자기 객관화라 한다. '커뮤니케이션 잘한다'는 말은 곧 '객관화를 잘한다'는 말과 일맥상통. 단지 논리적으로 주장을 펼치는 것 만으로는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아무리 언변이 좋거나 좋은 의도를 가진 이의 주장이라도 자기 객관화가 결여되었다면 결국 아전인수식 합리화로 귀결될 수 있다.
'정신과 의사들에 따르면 가장 정신 나간 사람은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행동한다고 한다. 다만 그 논리들이 말도 안 되는 전제를 기초로 하고 있을 뿐.' - 알렉산더 맥켄드릭, 영화 수업 中
객관화가 가능하려면 우선 보편 타당한 사고 방식에 대한 나름의 상식과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무엇이 보편 타당한가에 대한 정답은 없기에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일정 수준의 지식과 경험을 갖추었다면, 그 사람은 어느 정도 보편 타당한 사고 능력을 갖추었다고 간주된다. 또한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스스로의 상식과 기준을 지속적으로 수정 보완해야 한다.

그런데 종종, 그것도 꽤나 똑똑한 사람 중에서도, 도대체 보편 타당하고 객관적인 기준이 뭐냐고 되묻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스스로 다른 생각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졌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관대함이 아니다. 그저 객관화 능력이 결여된 것일 뿐. 이는 나이를 먹고도 기본적인 공중 도덕 조차 모르는 것 만큼이나 곤란한 경우이다.
'생각해 봅시다. 당신이 절대적으로 중심에 있지 않았던 순간이 있나요? 당신이 경험한 세상은 '당신' 앞이나 뒤, '당신의' 오른쪽이나 왼쪽, '당신의' 텔레비전이나 모니터 속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은 소통되어야 하는 객채지만, 당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은 너무나 직접적이고 간절한 실재입니다.' -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
자기 객관화 능력이 결여될 경우, 합리화의 함정에 쉽게 빠지거나, 목소리만 큰 진상이 되거나, 또는 자존감보다 자존심이 강한 유리 멘탈이 되기 쉽다. 서로 조화를 이루려면 나와 상대방의 입장을 조율하는 보편 타당한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객관적인 기준을 설정하지 못하니 자기 입장만 부르짖을 뿐. 무슨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내 입장 밖에' 생각을 못한다.

이런 사람의 토론 방식은 그저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거나, 아니면 귀찮으니까 져주거나, 그것도 아니면 '우린 서로 맞지 않아' 정도로 얼버무리고 마는 것이다. 합리적 사고를 위한 보편 타당한 가치 체계가 확립되지 않아서, 의미있는 마찰과 충돌을 통해 각자의 생각을 점검하며 보다 나은 대안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매사가 전투라 이기거나 지거나 비길 뿐.
'자기 객관화는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가장 고등한 사고의 방식이다. 자신의 관점만이 아닌 상대방 관점을 고려하고 공감한다. 나아가 자신과 상대 모두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갖추는 것이다.' - 정재승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록 긍정적 타자화 또는 자기 객관화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다. 미련하면 미련해서 똑똑하면 똑똑해서 자기 자신이라 규정지은 울타리 안에 있는 것들에 대한 애착을 비우고 비판을 수용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한다.

처세술 관점에서는 되도록 타인에게 타자화나 객관화를 요구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말했듯이 자기 객관화는 어려운 일이므로 상대방은 십중팔구 반감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는 항상 타자화나 객관화를 해야 한다. 그리고 나를 이런 상황으로 몰아주는 사람을 측근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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