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하는 그리스도인을 종종 본다. 그럴듯한 말이다. 그런데 이런 관점으로는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을 설명하기 어렵다. 아니 개혁은 뭐하러 한단 말인가? 어차피 문제는 늘 있기 마련인데. 자기 믿음이나 잘 지키면 그만이지.
인간 세상에 문제는 늘 있기 마련이고, 일부 문제가 있다면 적절히 수정하여 개선하면 될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가만 놔둬도 알아서 해결되기도 한다. 그런데 일부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가 썩은 구조적 문제라면 개혁을 미루면 안된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교회는 적당히 개선할 수준인가 아니면 당장 개혁이 시급한가? 나는 후자라고 본다. 한국 교회는 썩었다. 재물과 권세에 눈먼 맘몬의 소굴로 변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소수자를 핍박하는 괴물이 되었다.
특히 전병욱 목사의 홍대새교회는 한국 교회의 문제가 단지 일부의 문제가 아닌 교계 전체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 평양 노회가 전병욱 목사와 홍대새교회를 받아들인 것은 한국 개신교계 전체가 자정 능력을 상실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는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나?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과 근시안을 살펴볼만 하다. 두 가지 모두 역사 속에서 인류가 반복적으로 하는 실수이다.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어쩌면 종교 개혁이 일어난 500년 전과 지금 상황은 비슷하다. 당시에는 성경이 어려운 라틴어로 쓰여 대중이 읽을 수 없었다. 지금은 누구나 손쉽게 구해서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바빠서 읽지 못한다. 결국 성직자가 신앙을 독점한다.
사람은 때때로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권위에 맹목적으로 순종한다. 금송아지 우상을 하나님이라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요즘 성도들은 스스로 성경을 읽고 질문하기 보다는, 목사님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덮어놓고 믿어버린다.
성도가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과 합리적 사고 능력을 스스로 팽개치고, 목회자를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상황에서, 목회자는 쉽게 타락한다. 하나님을 밀어내고 스스로 교회의 주인이 되며, 그런 교회는 천박한 마피아 집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데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지 않은 사람에게도 구조적 문제는 너무 버겁다. 이럴 때 흔히 빠지는 실수가 바로 근시안. 사냥꾼 만난 꿩이 수풀에 머리를 박고 문제를 외면하듯, 구조적인 문제를 애써 외면하고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성도가 한국 교회 전체가 썩어 문드러지는 현실을 그저 방관한다면, 교회는 서로를 형제 자매로 여기는 공동체라 말할 수 없다. 더구나 이러한 근시안을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로 착각하면 정말 곤란하다. 문제 의식을 가지고 기도라도 해야 한다.
사회 구조적 문제를 혼자 해결할 수는 없다. 타락한 목사들이 회개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하지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매일 조금씩이라도 성경을 읽고 질문하고 기도하고, 썩은 교회를 떠나 다시 만나는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답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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