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쓰지만 왜곡된 교회 용어

공동체: 초대 교회의 공동체와 오늘날 교회 공동체는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그렇다고 지금 교회에서 공동체라는 용어를 잘못 쓰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과연 지금의 교회가 진정한 공동체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습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공동체란 무엇인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주일성수: 우선 안식일과 주일은 다릅니다. 주일성수 개념은 성경에 직접 언급되지 않습니다. 주일성수란 말 그대로 주일을 성스럽게 지킨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주일성수를 하려면 주일의 의미와 더불어 우리가 성스럽게 지켜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주일성수를 단지 일요일 교회 출석과 동일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특히 주일성수가 교회 가면 복받고 안가면 벌받는 일차원적 기복 신앙으로 귀결되면 교회는 결국 무당 점집과 다름 없게 됩니다.

성전: 구약 시대의 성전과 오늘날의 예배당도 의미가 많이 다릅니다. 제사장과 마찬가지로 성전 또한 예수 이전에만 존재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성막을 찢고 성전을 허물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성전과 제사장을 거치지 않고 하나님과 직접 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도 성전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예수의 존재 가치를 모욕하고 부정하는 심각한 죄일 수도 있습니다.

십일조: 본래 의미와 별개로, 십일조는 한국 교회 세속화의 상징처럼 여겨집니다. 논란이 정말 많은데, 이를 간단히 정리하기 어려워 관련 기사와 영상을 대신 소개합니다.

이방인: 교회에서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불신자를 이방인이라 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정확히 말하면 이스라엘을 제외한 세계 모든 민족은 모두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인 우리에게도 구원이 주어진 것이 바로 예수 구원의 은혜이고요.

제사장: 구약 시대의 제사장과 오늘날의 목회자 또한 의미가 다릅니다. 예수 이전 시대에는 오직 제사장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신 이후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직접 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제사장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는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과 직접 통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우리 모두가 제사장일 수도 있고요. 아무튼 목회자를 제사장으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주의 종: 목회자가 스스로를 제사장 또는 주의 종이라 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 종을 비판하지 말라 하죠. 그런데 성경에서 주의 종이라는 말이 언급된 민수기 12:8 내용과 문맥을 살펴보면, 여호와가 주의 종이라 칭한 사람은 모세 한 사람 뿐입니다. ‘내 종을 비방하지 말라’는 말은 대제사장 아론이 이방 여자 아내를 취한 모세를 비방한 것을 꾸짖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심지어 대제사장 아론조차 주의 종이라 불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레위기에 언급된 그 세세한 율법들로부터 자유롭게 하시고, 하나님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회는 예수 이전의 율법들을 교회 운영과 유지를 위해 악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도가 성경을 읽지 않고, 성직자의 권위에 맹목적으로 순종하게 되면, 성직자는 쉽게 타락합니다. 교회와 목회자를 존중하되, 내 신앙의 성장을 오로지 그들에게만 맡기지는 마세요. 인생과 신앙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위기의 시대, 신앙의 원점으로 돌아갑시다! 그 원점은 다름아닌 성경. 마틴 루터는 '말씀과 그리스도를 자기 안에 잘 형성하여, 이 신앙을 부단히 단련하고 강화하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단 하나의 수행'이라고 적었습니다. 성경을 읽기야 말로 이러한 수행의 시작입니다. 성경을 읽고 생각하고 질문하세요. 너무 바쁘면 매일 조금씩이라도 성경을 읽으세요. 나의 신앙이 자라면 교회가 변하고, 교회가 변하면 세상이 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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