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와 제갈량

융중의 초가에 머물던 제갈공명은 아직 출사를 하지 않았음에도 뛰어난 학식과 인품으로 인하여 이미 상당한 이름을 얻고 있었다. 또한 팔척 장신의 미남자였다. 그는 당시 형주에 모여있던 사마휘, 서서, 최주평, 석광원 등 당대의 학인들과 교분을 쌓았다. 제갈량의 장모는 형주에서 가장 높은 권세를 자랑하던 채씨 가문 사람이었다.

그는 최주평, 석광원 등에게 '자네들은 능력이 뛰어나니 출사하면 능히 태수나 자사 벼슬에 이를 것이다,' 말하곤 했다. 태수나 자사는 오늘날 도지사 쯤 되는 관직. 친구들이 '그러면 자네는 어떤 벼슬을 하겠는가?' 물으면 그저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늘 관중과 악의와 비교하곤 했다. 관중은 제나라의 이름난 재상이요 악의는 연나라의 명장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출사를 한다면 적어도 한 나라를 이끌어가며 천하를 도모하는 재상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졌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와룡선생이라 불렀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이 채 되기 전이었다.

그가 재상이 되려면 그의 주인은 황제가 될 수 있어야만 했다. 그는 당시 천자를 등에 엎고 천하를 호령하던 조조도, 장강 이남에 막강한 세력을 구축한 손권도, 혼맥으로 이어진 형주의 주인 유표도 아닌, 당시에는 변변한 기반도 없이 천하를 떠돌다 유표의 객장 노릇이나 하던 유비를 주인으로 택했다. 말하자면 삼성도 LG도 이모부가 부사장으로 재직중인 중견기업도 아닌 아직 법인 설립도 하지 않은 스타트업에 몸담은 샘.


유표는 학식과 덕을 갖추었으나 천하를 담을 그릇은 아니었다. 조조와 손권은 황제나 패왕이 될 만한 능력과 세력을 있었으나, 이미 세력이 너무 컸고 주변에는 사람이 많았다. 제갈량이 그들에게 가세한다 해도 제상의 반열에 오르기는 어려웠다.

반면 유비는 세력은 미약했지만 황제가 될 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황실 종친이었으니 황제가 될만한 명분도 있었다. 비록 너무 먼 친척이었지만 난세에는 그러한 명분이라도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음을 제갈량은 알고 있었다.

유비는 범상치 않은 상의 소유자었다. 사서에서 유비의 외모는 귀까지 찢어진 눈매와 어깨까지 늘어진 귀 그리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팔 등으로 묘사되곤 한다. 또한 유비는 황제가 될 만한 덕을 갖추었으며, 스스로 황제가 되려는 야망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조조에 비하면 유비 개인의 능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유비 입장에서는 제갈량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

유비는 평범한 선비 복장을 하고 찾아온 제갈량을 몰라본 적이 있다. 아차 싶어 황급히 사람을 보내 뒤쫒았으나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삼국지 스무번 넘게 보면서 이걸 단지 유비의 실수로 여겼는데, 이제보니 그나마 유비 쯤 되니까 아차라도 하는거지 왠만한 사람은 알아보지도 못한다.

주변의 흔한 리더라면 관우 장비가 텃새를 부릴 때 왜 저들과 융화하지 못하냐며 제갈량 네가 적응하라 나무라고, 주군의 검을 빌려달라 할 때 불 같이 노하거나 조용이 불러 사직을 권했겠지. 원래도 좋아했지만 나이 먹을 수록 유비의 비범함을 실감한다. 함께하고 싶고 돕고 싶지만 품은 뜻이 크고 비굴하지 않은 유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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