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 처음 교감한 사연

1년 넘게 어느 형제의 과외 지도를 하고 있다. 형은 올 해 대학을 보냈고 지금은 동생만 맡고 있다.

큰 놈은 나를 처음 만났을 때는 영어에 담을 쌓다 못해 공포증이 있는 상태였다. 이 녀석이 두고 두고 기특한 점은 노력을 통해서 스스로 쌓은 심리적 담을 극복했다는 것이다. 만일 담을 허물지 못했다면 이 녀석은 결국 평생도록 영어는 자기와 맞지 않는다며 영어와 담을 쌓고 지냈을 것이다.

이 집을 드나들면서 나도 30여년간 쌓아온 담 하나를 허물었다. 그것은 바로 개에 대한 공포. 지금껏 나는 개를 정말 싫어했다. 개 뿐만 아니라 애완동물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내게 다가오는 동물은 너무 싫다. 개가 나를 향해 짖거나 나에게 다가오면 뭔가 위험하고 더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날 이 집에서 말티즈 새끼를 분양받았다.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 녀석은 더럽거나 위험할 리 없다는 확신이 들 만큼 너무 작고 귀엽고 아기 냄새가 났다. 녀석이 하루가 다르게 크면서 점점 개의 면모가 드러남에 따라 녀석은 내가 싫어하던 여느 개와 마찬가지로 나를 향해 요란하게 짖고 달려들었다.

처음엔 당황했는데 인터넷 찾아보고 녀석의 몸짓 언어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녀석이 나를 정말 좋아하고 인간의 사랑을 끊임없이 갈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덧 이 녀석을 그리워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녀석과 친해지고 나니 다른 개들에게도 관대해졌다.


그리고 나는 이 녀석이 산책 공포증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 녀석은 다른 개들과 달리 산책을 싫어했다. 보통 개는 산책 환장하게 좋아하는데 이 녀석은 어려서부터 집 안에서만 자라서 바깥 세상을 두려워했다. 밖에 데리고 나가면 여간해서 걸음을 떼지 않고 안아달라고만 했다.

그래서 수업 끝나고 공원에 데리고 나갔다. 개 주인은 개가 추위 탄다고 옷 입히려 했는데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다. 개가 추워서 떠는게 아니라 무서워서 떠는 것임을 느꼈기 때문. 공원까지는 안고 가서 공원 벤치에 앉아서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이 놈은 여전히 안아달라고 졸랐지만 일부러 그냥 내버려뒀다. 그랬더니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앙칼지게 짖어댔다. 쬐끄만 녀석이 정말 온 힘을 다해 짖는다는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사람에게 달려들지는 않고 내 다리 밑에 숨었다. 이 녀석에게 가족이나 가족에 준하는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은 모두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자꾸만 안아달라고 조르길래 안아서 벤치 위에 올려줬더니 내 무릎위에 앉았다. 이제서야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녀석이 귀엽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해서 쓰다듬어주다가 다시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랬더니 주변을 킁킁거리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범위를 넓히며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녀석이 첫 산책을 시작한 것이다.

비록 내가 키우는 강아지는 아니지만 이 녀석은 나에게 정말 특별한 강아지이다. 이 녀석을 통해 느끼는 바가 많다. 이 녀석과 교감하면서 느낀 점은 스스로 노력하여 담을 넘어보기 전 까지는, 그것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세상과 담을 쌓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 혼동해서도 안될 것이다. 그것은 그저 나 자신을 고립시키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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