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의 요동 정벌 계획

요즘 취미 삼아 역사 소설을 하나 쓰고 있어서 영감을 얻고자 드라마 <정도전>을 챙겨보고 있다. (소설은 말 그대로 취미 삼아 짬짬히 쓰는거라 진도는 하염없이 느려서 언제 완성될지 기약은 없음. ㅎㅎ) 뭐 소설 때문이 아니더라도 원래 사극을 좋아하기도 하고.

드라마 정도전을 보고 있자면 아무래도 <용의 눈물>이 오버랩되지 않을 수 없다. 이인임이 죽고 나서는 더욱 그렇다. 나는 솔직히 용의 눈물이 훨씬 더 재밌었다. 정도전이 별로라는게 아니라 용의 눈물이 너무 고퀄. 심지어 '정도전' 케릭터 조차 용의 눈물 쪽이 훨씬 더 카리스마 넘친다..

근데 오늘 (48회) 방송에서는 용의 눈물에서는 볼 수 없던 내용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도전의 요동 정벌 계획에 대한 재조명. 용의 눈물에서는 정도전의 요동 정벌 계획이 단지 시대착오적인 야심과 재능 낭비 정도로 그려졌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도전>에서는 정도전의 요동 정벌 계획이 명나라의 내부 정세는 물론 여진족의 잠재적 위험까지 고려한 구상임을 보여준다.

명나라 내부 정세는 그렇다 치더라도 여진의 잠재적 위험을 고려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가! 실제로 여진은 결국 명나라를 몰아내고 청나라를 세웠으며, 병자호란으로 인조는 삼전도비의 굴욕을 당하지 않았던가!

정도전은 요즘 말로 '진짜 개 쩌는 사기캐'였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이런 생각이 들고나니 정도전의 비운이 참으로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정도전이 시대를 앞선 통찰력을 가진 불세출의 준재였는지는 몰라도, 정치인으로서는 그리 훌륭하지는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이상을 실현하려는 정도전에게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거추장스러웠을까? 뭔가 좀 해 보려는데 몸사리며 뺑기쓰는 헛똑똑이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정도전 입장에서 이들과의 논쟁은 쓸데없고 소모적인 입씨름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정도전은 이들을 힘으로 찍어누르려 했을 것이고.

하지만 무릇 정치란 이런 쓸데없고 소모적인 입씨름을 반복해서라도 다른 이와 어떻게든 소통을 해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아닌가 싶다. 상대가 너무 병신같고 그래서 그들과의 반복되는 논쟁이 지겹다 못해 역겨울 지경이라도, 이러한 과정이 비록 너무 느리고 무의미해 보여도, 이러한 과정마저 충분한 시간을 두고 감래하며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 바로 정치가 아닐런지. 그래서 나는 정치야말로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도전의 최대 정적 이방원이 결국 정도전의 정책 중 상당 부분을 수용했다. 정도전과 이방원의 목표는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었지만, 사병 혁파를 비롯한 그들의 행보는 사뭇 비슷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람 일이라는 것이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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