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과제 중소 기업 R&D 기술 개발 지원 사업에 대한 제언

한국 경제 신문의 '벤처 망치는 국가 R&D'라는 기사를 읽고 느낀 점을 적어봅니다.

우선 벤처 케피탈의 선택을 받은 기업만이 우수 기업이며 그렇지 못한 허접한 기업이나 정부 지원을 받는다는 식의 논조는 다소 거슬린다. 사실 벤처 투자를 받은 기업의 성공률은 10% 내외이다. 게다가 국내 벤처 케피털의 출자자(LP) 비중의 상당 부분을 정부 기금이 차지한다. 그러니까 국내에서 벤처 투자를 받았다면 간접적으로 정부 지원을 받은 샘.

정부 과제에 맹점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사실 지금의 한국 벤처 업계는 직간접적인 정부 과제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벤처 업계 뿐 아니라 학계 예술계 역시 상당 부분 정부 지원 자금에 의존하고 있다.) 그 만큼 한국의 벤처 업계는 그 역사나 규모 면에서 미국에 비해 여러모로 미숙하다. 당장 정부 지원 없으면 외주 수주로 눈길을 돌려야 하는 것이 대다수의 한국 스타트업이 처한 현실.

이처럼 다소 거슬리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위 기사 내용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사실 벤처 업계에서는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거시적 관점에서는, 나 또한 민간 기업에 대한 정부의 자금 지원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비단 대기업 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마찬가지. 왜냐면 공적 자금이 민간 기업에 직접 지원되어야 하는 명확한 명분을 찾기 어렵기 때문.

연초 정부 과제 부처별 합동 설명회 현장

아마 명분을 찾기 어려운 것은 정부 기관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정부 기관은 기업에게 과도한 분량의 사업계획서 따위를 요구한다. 사실 사업계획서 분량이 사업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설명이 간단할 수록 좋은 아이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정부 지원 사업의 경우, 지원금 규모와 요구하는 서류 분량은 정비례한다. 작을 수록 좋은 아이템일 가능성이 높은데, 작은 아이템으로는 지원 서류를 꾸미는 것 조차 어려우니 아이러니.

빠른 변화가 생명인 스타트업에게 있어, 요식 행위와 안정성 위주의 정부의 틀에박힌 일 처리 방식은 적합하지 않다. 그런데 정부 지원 받다보면 이를 따를 수 밖에 없다. 정부 지원 사업에 선정되려면 실제 사업 개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거추장스러운 사업계획서 양식과 씨름해야 한다.

그래서 진짜 역량있는 기업 보다는 정부가 좋아하는 서류를 잘 만드는 기업이 지원 사업에 선정된다. 앞서 언급한 기사 내용 중 '우수한 기업은 정부 지원을 일부러 받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부분을 지적한 것일 터. 선정 이후에도 최초 사업 계획서를 들이밀며 왜 이대로 되지 않았냐며 지적하는 정부 심사관의 태도는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다. 하루에 열 두 번도 변할 수 있는 것이 스타트업의 사업 계획인데, 정부는 1년 전에 세운 계획 대로 움직이라고 요구한다. 앞서 말하였듯이 스타트업은 변화가 생명인 소규모 조직. 대기업 조차 1년 전에 세운 사업 계획을 그대로 밀고 나가지는 못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조직은 오직 정부 기관 뿐. 기업에게 있어 사업 계획의 변경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바람직하다.

또한 R&D 자금 지원하는 정부의 요구와 기대가 너무 조급하다. 당장 매출을 요구하는 것도 모자라 고용 창출까지 기대한다. 원래 R&D는 재무 성과를 기대하지 않는 말 그대로 연구 개발. R&D는 원래 절대 다수가 실패할 수 밖에 없고 당장 재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정부 기관은 혈세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다.
'정부나 비영리 단체도 수치를 중시한다. 수치는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을 때 진척 정도를 측정하는 데 유용하다. 그러나 수치는 혁신을 질식시킬 수도 있다. 보조금 신청서마다 어떤 연구를 실행할 것인지, 그것을 어떻게 축정할 것인지 적어야 한다면, 예기치 못한 경로 탐구나 잘못되었지만 흥미로운 시도 따위는 기대하기 어렵다.' - 조이 이토, 나인 中
그런데 아무튼 매년 상당한 규모의 정부 공적 자금이 벤처 기업 자금 지원에 투입되고 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벤처 업계에 지원된 그리고 앞으로 더 지원될 정부 자금이 제대로 그 값어치를 하려면, 정부의 민간 기술 개발 지원 사업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까?

나는 정부 지원을 받은 기업들이, 그것이 성공 사례던 실패담이던 간에, 그들의 경험을 최대한 많이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온라인 컨텐츠로 만들어 무료고 공유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경험 가운데에는 사실 실패담이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실패담이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간혹 정부 기관에서 나름 성공 사례랍시고 몇몇 사례들만을 뽑아서 홍보용 책자를 만들곤 하는데,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런건 정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예비/초기 창업자에게 있어 성공담보다 실패담이 가치가 있는 이유는, 대다수의 초기 창업자들은 성공 궤도에 진입하기도 전에 창업자들의 공통된 실수를 답습하며 에너지를 다 써버리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 자금을 받은 많은 벤처 기업 역시 그들의 열정과 노력을 시행착오에 대부분 쏟아내고 결국 뭔가 알겠다 싶을 때 쯤 정부 지원 자금은 끊기기 일수. 이것은 기업과 정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앞서 말했듯 벤처나 R&D 대다수는 실패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고, 정부 또한 민간 기업을 무한정으로 지원할 수는 없는 노릇.

따라서 나중에 정부가 벤처 기업에 직접 자금을 지원하지 않게 되더라도, 예비/초기 창업자들이 벤처 업계에 공유된 수많은 경험 자료를 통하여 사전에 간접 체험 및 학습을 함으로써, 적어도 선배 창업자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음으로서 보다 적은 비용을 투입하고서도 성공의 목표에 보다 빨리 도달할 수 있도록 함은 물론, 창업가가 아니더라도 창업과 기업가 정신에 대하여 충분히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가 하는 일은 어디서나 비슷하다. 그러나 개인과 자발적으로 결성된 단체들은 각종 실험과 경험을 끝없이 하게 된다. 국가가 특별히 할 일이 있따면, 그것은 각 개인들이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축척한 경험을 수집 보관 관리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불필요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정부는 일정한 실험만 강요해서는 안되고, 각자가 다른 실험을 통해 무언가 얻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자금이 넉넉한 벤처 기업이 어디 있을까? 그런 점에서 아무리 정부가 이래저래 괴롭힌다 한들 정부 지원 자금은 개별 벤처 기업 입장서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 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민간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직/간접 자금 지원은 바람직하지 않다. (막대한 설비 투자가 필요한 몇몇 기간 산업은 논외로 하자.) 정부 본연의 역할은 개별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아닌 범용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왕지사 벤처 기업에 R&D 자금을 지원해왔고 또 적어도 당분간은 더 지원할 것이라면, 지원 대상 기업 선발 과정에 보다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쓸데없이 복잡한 기존의 HWP 사업계획서 양식을 버리고 창업 기업에게 꼭 필요한 항목만 포함된 간소한 양식을 채택해야 할 것이다. 사업 계획서 양식은 대표적인 해외 창업 경진대회 또는 창업 보육 기관에서 쓰는 양식을 따르면 될 것이다.

시제품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자금 지원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정부 측에서 가장 우려하는 '먹튀'는 대부분 시제품이 없는 상태에서 지원금을 받은 경우 발생하기 때문이다. 시제품이 없는 예비 창업자의 경우에는 직접 자금 지원 보다는 시설, 공간 등을 지원함으로서 먹튀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금을 지원하더라도 제한된 금액으로 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일단 지원 대상 기업을 선정하고 나면 거의 묻지마 투자에 가깝게 내버려두는 것이 좋다. 지원금 사용에 있어 기업이 부담을 느낀다면,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온전한 지원 사업이 아닌 일종의 용역이 되는 샘이다. 정 믿고 맏겨두기 불안하다면 불안하지 않을 만큼만 지원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당장의 재무 성과나 고용 실적 따위를 요구하기 보다는 그들의 진솔한 경험담을 경청하고 기록하고 정리하라. 꼭 문서 형태가 아니어도 좋다. 강연 영상의 형식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기록이야 말로 그 어떤 지원 사업보다 훌륭한 창업 인프라가 될 것이다. 정부 지원 수혜자 중 일부에게 예비 창업자를 위한 창업 실무 교육 또는 멘토링을 의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적어도 창업 경험도 없고 본인이 딱히 똑똑하지도 않으면서 경영지도사 자격증 하나 따가지고 멘토랍시고 다니는 사람들 보다는 백배 천배 좋을 것이다.)

또한 스타트업에게 병역 특례 채용 기회를 준다면 이야 말로 정말 획기적인 지원이 될 것이다. 스타트업은 언제나 인력난에 시달리며,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싶은 젊은 인력들도 군대 문제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보다 병역 특례 기업 선정 기준을 대폭 완화하여, 기업이 현재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의 요건만 갖추면 병역 특례 인원 채용 대상 기업으로 선정하되, 선정 유효 기간은 3년 정도로 제한을 두어 기간 연장을 원할 경우 재심사를 거친다면 많은 스타트업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음은 물론, 병역 특례 대상 기업이 늘어나더라도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 감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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