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실패를 통해 도출되는 가장 기본적인 교훈은 바로 가장 작게 시작하라는 것이다. 실패를 하더라도 작게 하면 피해가 적고, 실패를 통한 배움을 토대로 다른 시도를 할 수 있다. 10층에서 떨어지면 죽지만 2층에서 떨어지면 좀 다칠 뿐.
그런데 교수님은 작은 시도 보다는 이른바 큰 그림 그리는 사고 방식에 익숙하다. 전부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 교수님의 큰 그림은 좋은 페이퍼 소재일 수는 있으나 실제 구현 가능성은 희박한 경우가 많다.
물론 학자의 연구가 반드시 실현되어야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연구 자체로 학술적 의미가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 현실성 없는 아이디어는 가치가 없다고 간주된다. 실현이 되더라도 수익보다 비용이 크면 영속하기 어렵다.
이론에 해박한 공대 교수님이 기술 구현에 문외한일 수 있다. 사례 분석에 정통한 상대 교수님이 경영 실전에 잼병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보통 교수님이 현실 문제 해결에도 전문가일 것이라 간주하고, 교수 자신도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교수님이 과업의 최종 책임을 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컨설턴트와 마찬가지로 나름의 대안을 도출하지만 실행을 직접 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습성 때문에 교수님은 일은 왕창 벌여 놓고 수습은 아몰랑 하는 경우가 많다.
교수님은 마음만 먹으면 비교적 쉽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공간, 사람 같은 자원을 거의 무료로 조달할 수 있다. 다만 수준은 높지 않다. 캠퍼스는 아늑하지만 접근성이 떨어진다. 학생들 수준이 현업 종사자보다 높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이런 애매한 풍족함 또한 교수님이 실패를 통해 배우는데 방해가 되곤 한다. 특히 학생들의 미숙함은 교수님의 좋은 변명 거리. '내 계획은 훌륭했지만 학생들 실력과 책임감이 부족했다' 말해도 교수님께 반박할 사람은 없다. 적어도 학교 안에는.
교수님은 방대한 전공 지식을 갖고 있다. 보유 자원도 비교적 넉넉하다. 그런데 스스로 창업 초보라고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다른 창업자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조건에서 시작하지만, 역설적으로 성공하기 가장 어려운 부류.
특히 교수님이 플랫폼 운운하면 경계해야 한다. 위험 신호다. 플랫폼이라는 용어가 남용되면 실체가 모호하거나 실은 존재 조차 없는 것을 뭔가 대단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이는 큰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교수님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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