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없는 빠른 실행

고민 없는 빠른 실행, 좋은 말이다. 이게 안되면 스타트업 하면 안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저 당연할 말을 전면에 내세우고 강조하는 기업가를 다소 경계하게 되었다. 왜냐면 저 말의 본래 뜻을 왜곡하여 남용하는 경우가 많어서.

고민하지 말고 일단 해보자 말을 하려면 실행 단위가 매우 작아야 한다. 계획이 무가치해서가 아니라, 실행 비용이 정말 작다면 고민하느니 실행하는 것이다. 그러니 고민 없이 실행을 하려면 일의 크기가 충분히 작아야 한다.

'Nothing is particularly hard if you divide it into small jobs.' – Henry Ford

바꿔 말하면 고민 없는 빠른 실행은 목표가 아닌 결과. 고민과 계획이 필요 없을 만큼 일을 쪼개서 실행 단위와 비용을 줄이고, 중요한 일 부터 먼저 하면 고민 없는 빠른 실행은 저절로 된다. 고민이 가치가 없어서 안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실행 뒤에는 반드시 회고가 있어야 한다. 실패 원인을 모른 채 다음 시도를 하는 것은 슬롯 머신을 당기는 것과 다름 없다. 지난 실패에 대한 고찰 없이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은 진취적 실험이 아닌 막무가내 좌충우돌 낭비.

'이유 없는 무조건 실행은 죄악이다. 실수에서 배우는 능력이 성공을 낳는다.’ - 스티브 블랭크

그런데 흔히들 질문과 생각 없이 여러 가지 일들을 정신 없이 저글링하는 것을 고민 없는 빠른 실행으로 착각한다. 이는 결국 사람 갈아 넣기로 귀결된다. 혁신 성장 같은 미사여구로 치장해도 본질은 변함 없다.

스티브 잡스도 현실왜곡장을 펼치며 사람을 갈아 넣었다. 우리 주변 리더들도 나름의 왜곡을 펼친다. 그들을 따르려면 여기에 속거나 속아줘야 한다. 잡스와의 이들의 차이는 지향하는 목표와 왜곡에 동조하는 사람의 수준에 있다.

잡스의 특장점은 선택과 집중인데, 성격 파탄만 배우는 경우가 많아 이를 잡스병이라 한다. 참고로 그는 암을 키우다 죽었다. 스스로에게 현실왜곡장을 시전하다가. 이러한 잡스 조차 자기 의견에 반하는 직언을 경청했다.

'정신과 의사들에 따르면 가장 정신 나간 사람은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행동한다고 한다. 다만 그 논리들이 말도 안 되는 전제를 기초로 하고 있을 뿐.' - 알렉산더 맥켄드릭, 영화 수업 中

내가 기업가 정신을 '위대한 꿈을 품고 가장 작게 시작하기'로 정의하면, 보통은 갸우뚱하고 창업 경험자 중 일부만 이해한다. 가장 작은 시작은 내겐 너무 당연한 것이 되어 이젠 부연 설명 조차 어렵다.

작은 시작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지만, 처음부터 흐지부지 되거나 되도 않는 일에 힘을 빼서 재기 불능 상태 되지 않게 해준다. 실행력 관점에서, 일단 저지르고 보는 과단성보다 가장 작은 시작점 찾는 지혜가 훨씬 중요하다.

큰 꿈과 작은 시작은 역설적인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작게 시작하지 못하면 정말 큰 꿈도 꿀 수도 없다. 이른바 (어중간한) 큰 그림 그리면 생각과 시야가 딱 그 그림의 폭만큼으로 제한된다.

'아드레날린 중독 상태인 리더는 계획은 낭비고 전력 질주만이 최선이라 믿는다. 이런 문화는 필사적인 급박함을 효율적인 생산성이라 믿는다.' - 프로젝트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中

가장 작게 시작하라는 말은 앞뒤 재지 말고 일단 해보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아무리 궁리해도 당초 기대 이하로 일의 크기와 리스크가 줄어들지 않으면 아예 시작을 말라는 뜻이다. 

일 벌이기 좋아하는 사람은 시작 자체에 큰 의미를 둔다. 약간의 감각과 재주를 갖췄다면 그렇게 벌린 일이 제법 그럴싸하다. 이런 사람은 요즘 말로 프로 스타터라고 부르면 되겠다.

뭐든 실제로 해보지 않고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고수는 칼을 빼기 전에 상대를 가늠한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맛을 안다는 태도는 열정보다 미련함에 가까울 수 있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만큼 쓸모 없는 일은 없다.” - 피터 드러커

누군가의 역량이 100이라면, 110~120 정도 일을 할 때 성장한다. 헬스할 때 자기 힘 보다 조금 무거운 중량 들어야 근 섬유 다쳤다가 더 세게 아물면서 근육이 생기는 것 처럼.

자기 역량보다 못한 일을 하다보면 일 자체에는 어려움이 없겠으나 역량이 일의 수준에 맞춰 퇴화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 이외의 다른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150 혹은 200 이상을 맡아버리면 자칫 부러지거나 죽을 수도 있다. 죽다 살아나면 초사이어인 되기도 하지만, 어떠한 경우라도 무리수는 옳지 않으며 권장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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