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의 실패 예측

신사업은 어차피 열에 아홉은 망하므로, 잘될걸 알아보는게 어렵지 망한다 예측하는건 비교적 쉽다. '거 봐 내가 뭐랬어' 같은 실패 예측 만으로 엄청난 통찰을 지닌 것 처럼 뻐기는건 우스운 일이다. 이런 경우가 드물지만, 오히려 예상을 뒤엎고 잘 되는 케이스에서 배울 점이 있다. 그래서 내 예상이 틀리길 바는데 거진 맞다. 말했듯이 실패 예측은 쉬우니까.

열의는 넘치지만 경륜이 부족하면 일을 쉽게 보고 무턱대고 덤빈다. 때로는 섣부른 열정이 의외의 성과를 내지만, 대개는 흐지부지 수포가 되기 마련. 그저 열심히 으쌰으쌰 하거나 똑똑한 척 하는 것은 정말 잘 하는 것과는 다르다. 노련하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들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이다.

주니어 시절에는 열심히 하는 것 만으로도 칭찬받을만 하지만, 관리자나 임원 심지어 사장이 되어서도 그저 열심히만 하려고 든다면 이들의 열심은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연차와 직급이 쌓일 수록 자존심도 커져서 옆에서 누가 뭐라 말해주기도 애매하다. 멍청한데 열의있고 부지런한 리더가 최악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무릇 특정 분야의 시니어라면, 그 분야 일은 굳이 찍어 먹어보지 않아도 똥인지 된장인지 어느 정도 감이 와야 한다. 선입견이 부작용을 낳기도 하지만, 페턴 인식 자체가 없는 것은 사려 깊거나 열정적이거나 사회 생활 잘하는 것이 아니다. 경륜이 없고 시니어 답지 못한 것이다. 이런 사람을 측근에 두고 직언은 외면하는 대표도 좋은 경영자가 아니고.

말도 안되는 공상 못지 않게 위험한 것이 말은 되지만 실은 말처럼 쉽지 않은 그럴싸한 목표. 이를 구별하여 걸러내는 안목이 진정한 시니어의 경륜. 이러한 판단 없이 무턱대고 돌격하는 것은 열정이 아닌 객기. 젊은 시절에는 객기도 멋이라지만, 나이 먹고 객기 부리면 젊은이보다 훨씬 크게 다친다. 리더가 객기 부리면 조직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애초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효율적으로 끝내는 것 만큼 쓸데없는 짓도 없다 - 피터 드러커

같이 일하기 피곤한 타입 있냐고 묻는 질문에 즉흥적으로 '잘난 주니어'라고 답한 적이 있다. 사실  답을 정해 놓은 리더가 훨씬 피곤하지만,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나름 실력있는 꼴통 주니어도 꽤 피곤하다.

제법 손이 빠르고 빠릿빠릿한 주니어는 어디서든 환영받는다. 가성비 좋으니까. 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름 성과 내고 잘한다 칭찬 들으니 우쭐하기 쉽다. 여기까진 괜찮다. 바람직하다.

그런데 매사 지나친 것이 문제. 그릇이 작고 우쭐이 지나쳐 교만하면, 섣부른 확신을 갖게 되어 요즘 말로 젊은 꼰대가 되거나, 자기 만큼 못하는 사람을 병신 취급 한다. 동기나 후배는 물론 선배들도.

그 병신들 중 몇몇은 실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다. 시니어로서 해봐야 득될 것이 없거나 하면 안 되는 일이라 여겨. 이들 눈에 설익은 주니어 설치는 꼬라지는 그저 안타까울 따름.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호언하는 자는 열정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애송이나 사짜일 수 있다. 무엇이든 반대하는 자는 뭘 좀 아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은 매사에 부정적인 고집불통일 수 있다.

현재 상황을 개선하려면 더 나아가 일류가 되려면, 단지 열심히 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슬기롭게 제대로 잘 해내야 한다.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인지 파악하고 문제 해결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非人不傳 不才承德 | MBC 드라마 허준

그렇다면 실패 예측에 있어 선입견과 오판을 줄이는 방법은 없을까? 실패 예측 이유가 황당, 놀람, 듣도 보도 못함, 전례 없음 따위의 것이라면 섣부른 판단을 잠시 유보하고 다시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잘 안될 것 같다와 망할 것 같다를 구분해 보는 것도 방법. 이게 되겠나 싶은 것이 의외로 될 수가 있다. 그런데 망조가 보이는 것은 결국 망한다. 당장은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것 처럼 보이는 상황이라도.

실제로 이런 이유로 수십번 까인 뒤에 결국 대박난 사례가 꽤나 많고, 그래서 실리콘벨리 투자자는 터무니 없는 사업을 만나도 실패를 함부로 단언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것들이 결국 다 성공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실패 예측 이유가 다른 사례에서도 목격할 수 있는 유사하고 반복적인 것에 가깝다면, 이런 경우는 어느 정도 단호하게 판단해도 좋을 듯. 톨스토이는 행복한 가정은 살아가는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이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고 했다. 기업은 그 반대다. 성공한 기업은 차별화 요인을 가지고 있고, 실패 이유는 대게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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