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하나만 고치면

저 사람은 다 좋은데 이것 하나만 고치면 좋은데 같은 생각은 대체로 부질없다. 그것 하나를 못 고치는 것이 그 사람의 한계. 그거 하나를 왜 못 고치냐고? 블록체인 데이터의 비가역성을 떠올려보면 대략 이해가 된다. 당장 눈에 보이는 현상은 고작 그거 하나지만, 그 하나에 연관된 것들이 엄청 많을 수 있다.

뭔가 안 풀리는 것 같은 지인이 잘 됬으면 하는 마음에 '넌 이것만 고치면 잘 될 것 같아' 따위의 말을 하는 것은 보통 무례하고 경우없는 짓이다. 그러니까 당신은 정말 좋은 의도를 가지고 조언했을지 모르지만, 결과는 좋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일단 상대방이 잘 안 풀리고 있는 상황을 굳이 상기하는 것 자체가 무례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졌어도 지가 좀 잘나간다고 건방 떤다고 오해 받기 십상. 지인이 대인배라 오해 없이 이해한다 쳐도 굳이 할 필요 없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인생은 현미경으로 보면서 다른 사람들 인생은 망원경으로 훑는다. 나의 삶과 언행은 정성을 다해 정당화하지만 다른 사람은 섣불리 판단하고 일반화한다. 그 사람이 안 풀리는 원인에 대한 당신의 진단은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냥 당신이 평소에 그 사람에게 가졌던 불만인 경우가 많다. 심지어 불만이 생긴 진짜 원인은 사실 당신 안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수록 그러할 가능성이 높다.

자기 문제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 물론 스스로 문제의 원인을 모르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지만, 그렇다고 당신 진단이 맞다는 보장도 없다. 당신이 지적한 사안을 당사자는 이미 수십 수백번도 더 고민했을 것이다. 자기 문제를 까맣게 모르는 대책 없는 사람이면 어떤 말을 해도 소용 없으므로 당신 진단이 옳건 그르건 의미가 없다.

그런데 '너는 진짜 이것만은 고쳐!' 같은 말이 꼭 필요할 때도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것만 고치면 잘 된다' 보다 차라리 '이것 때문에 망한거야' 같이 말하라. 같은 말 아니냐고? 후자 쪽이 훨씬 쎄고 인과 관계도 명확하다. 정말 말하려고 마음 먹었다면 어설픈 조언을 하느니 확실한 직언을 하라는 것이다. 단, 당신이 그럴 자격이 있다면. 자격 없는 직언은 막말일 뿐.

쓰디쓴 직언을 하려면 당신이 적어도 상대방 인생을 돋보기로는 본 이후여야 한다. 같이 일을 해 봤거나 함께 생활해 봤다던지, 아니면 상대의 활로를 열어줄 정도의 은혜를 배풀 상황이라던지.

그리고 이런 말을 하려면 관계를 끝장낼 각오도 해야 한다. 당신의 직언이 옳더라도 상대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정말 필요하다 싶으면 하라. 어쩌면 이런 직언을 할 수 있는 당신이 진또배기일 수 있다. 근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관계가 끝장날 가능성이 높은 극약 처방임을 명심해야 한다.

매사 의도는 좋지만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이를 알고 삼가 조심하는 것이 연륜. 나쁜 결과 앞에서 내 의도가 이렇게나 좋았다 구구절절 변명하며 정당성을 인정받으려 하는 것은 자기 중심적이고 미숙한 태도.

어쩌면 고쳐야 할 사람은 상대방이 아닌 나 자신인데, 남의 눈의 티는 보고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겠으면, 굳이 바꾸려 들지 말고 약간 거리를 두는 것이 그나마 현명한 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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