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공부는 죽어라 하는데 성적은 절대 오르지 얺는 녀석이 한둘 쯤 있어 놀림과 조롱의 대상이 되곤 하는데, 지나보면 아무 노력도 안 한 녀석보다는 낫다. 하지만 조금 나을 뿐이지 훌륭한 것은 아니다.
고질적 문제를 맞딱드리면 가던 길을 멈추고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지금의 방법과 방향이 틀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근성은 인생을 돌파하는 필수 덕목이지만, 자성 없는 근성은 한계가 명확하다.
근본 원인을 모르면 노력한답시고 몸부림 칠수록 상황만 꼬인다. 나는 나름 열심히 하는데 알아주지 않으니 억울함만 쌓인다. 원인을 안다고 문제가 당장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알고 나면 적어도 덜 억울하다.
기쁨은 나누면 두배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슬픔이란 시간 지날 수록 옅어지는 종류의 것이다. 망각은 인간의 대표적 방어 기제. 절망적인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옅어지고 회복되곤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고 반복되는 고질적 문제는 나눈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 함부로 나누는 것은 주변 사람에게 마음의 짐을 지우는 민폐일 수 있다. 스스로 도저히 감당이 안되면 전문가나 그에 준하는 자와 상담해야 한다. 물론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스스로를 냉정히 돌아보고 근본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물론 외부 원인도 있을 수 있지만, 먼저 나 자신을 냉철하게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실패는 결코 성공의 어머니가 되어 주지 않는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실수에 대한 반응이 사람의 그릇을 결정한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경우가 최선, 없었던 일로 치고 잊어버리는 것이 차선 아니 차악, 뉘우치기는 커녕 남 탓이나 하는 것이 최악.
‘에라 모르겠다 일단 지금 이 순간만 모면하고 보자’ 같은 마음이야 말로 발전을 가로막는다. 살다 보면 정말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그래도 왠만하면 쓰지 말아야지 이걸 처세랍시고 반복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인간이 추해진다.
나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기란 어렵다. 오랫동안 틀린 채로 살아왔다면 더욱. 과오를 인정하는 순간 지나온 날들에 대한 후회와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이는 자기 방어 본능에 위배되는 괴롭고 쓰린 경험이지만, 정면으로 받아내고 나면 적어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당장 무섭다고 수술 거부하면 병을 더 키운다.
일이 잘 될 때는 문제를 알고 단점을 고치기 어렵다. 따라서 잘 되고 있을 때가 아니라 막힌 시기를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냐가 인생 전체를 결정짓는다. 막힌 시기를 잘 보내야 좋은 시기가 올 때 치고 나갈 역량을 갖게 된다.
장자께서는 60세 되는 해에 ‘59 비(非)'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돌이켜보니 본인이 살아온 59년의 삶이 잘못되었더라는 뜻이다. 장자께서는 지난 59년의 삶을 부정하고서라도,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고자 하신 것이다.
자기 부정은 변화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이려는 인간 본능을 거스르는 불편한 행위. 그래서 보통은 자기 부정 대신 변명이나 합리화를 한다. 하지만 자기 부정 없이는 괄목할만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나온 삶과 선택을 후회하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후회란 바람직한 자기 반성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후회란, 적어도 과거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것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졌다는 증거이다.
오히려 마땅히 후회해야 하는 상황에서 조차 후회와 반성을 거부한다면, 인간답지 못하게 퇴보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후회에 지나치게 몰입하여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고민한다고 흘러간 물이 다시 오지 않는다. 슬프고 억울해도 과거는 과거로 묻어버리고 오늘을 살아야 한다. 과거에 붙잡혀 앞으로 올 날을 더럽혀서는 안된다. 제왕 백 명의 권력을 모아도 지나간 시간을 다시 불러올 수는 없다. 어찌 지나간 일로 인해 오늘을 그르치는가! - 벤자민 프랭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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