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꾼과 기업가의 기로에서

예리한 통찰, 탁월한 리더십, 남다른 그릇은 희소한 자원. 가진 사람도 드물거니와 알아보고 들어 쓰기도 어렵다. 그런데 이런 역량이 있어도 먼저 장사꾼이 되지 못하면 기업가도 될 수 없다.

장사로 흥하려면 흔히 촉이라 부르는 사람과 시장에 대한 관심과 관찰이 필요하다. 때로는 순전히 운으로 얻어 걸리기도 한다. 운이든 실력이든 장사의 문을 열고 나면 이른바 물이 들어온다.

물 들어오기 시작하면 한 동안 일사천리 파죽지세. 돈이 넉넉하니 걱정이 없다. 몸은 바빠도 마음에 여유가 넘쳐 하는 일 마다 잘된다. 남들이 우려하던 과감한 결정이 거듭 들어 맞기도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추켜세운다. 아닌척 하지만 어깨 뽕이 들어간다. 이제부터 이래이래 요래요래 하면 세계 정복은 따놓은 당상 같다. 그런데 갑자기 서서히 일이 꼬이고 막히기 시작한다.

백여년 전만 해도 영유아 사망률 높았다던데, 스타트업의 운명도 비슷하다. 열에 아홉은 걸음마 때기도 전에 사망한다. 그런데 용케 영유아 시기 버텨내고 성장 이룬 뒤에는 사춘기 찾아온다. 

이 때 어떤 방향 택하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데, 사춘기 청소년이 그렇듯 스타트업 자존심도 대단해서 한 번 꽃히면 죽도록 고집한다. 목숨은 걸어도 비대해진 자존심은 끝내 놓지 못한다.

이것이 장사에 성공한 창업자가 처음 맞이하는 위기이자 기회. 장사의 강에서 본격적인 기업 경영의 바다로 나가는 기로에서, 촉과 열정만으로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어깨 힘도 빼야 한다.

어떤 이는 자기 한계를 자각하고 배를 돌려 강가에 머문다. 호기롭지는 않지만 나쁘지 않은 선택. 장사만 잘 해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다. 항해사 조타수도 필요없다. 그물 던질 잡부면 충분하다.

그런데 자의든 타의든 기업가 영역으로 나아간 창업자 중에 경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가 의외로 많다. 지도와 나침반 없이 망망대해로 나선 형국. 평소처럼 열심히 노를 저어보지만 표류할 뿐.

경험 많은 사람부터 말 없이 떠난다. 오지랖 넓은 별종의 문제 제기는 자존심 때문에 들리지 않는다. 사업이란 원래 복잡하고 정답이 없다는 뻔한 자위는 경영과 전략의 부재의 변명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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