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 장교 숙소의 추억

나는 모 부대 사단 본부에서 장교로 복무했다. 초급 간부였던 나는 영내 독신 장교 숙소(BOQ)에 살았다. 아무리 열악한 부대라도 보통 사단 본부쯤 되면 그래도 시설이 어느 정도 좋기 마련인데 우리 부대는 사단 본부 조차 많이 열악했고 특히 영내 BOQ는 최악이었다. 부임 첫날 밤 천장에서 쥐들 올림픽 하는데 정말 심란하더만..

시설도 시설이지만 청소 상태가 정말 엉망이었다. 음식 쓰레기를 따로 분리하지 않고 100리터 쓰레기 봉투 하나에 모두 넣어 문 밖에 놔두는 바람에 도둑 고양이들이 쓰레기 봉지를 찢어 난장판을 만들기 일수였다. 수압이 약한 화장실 변기는 대부분 막혀있었고 냄새는 이루 표현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렇다보니 사단 내무 사열에서 영내 BOQ는 언제나 주요 타깃이었다. 참모장(대령)이나 감찰참모(중령)에게 갈굼당한 본부대장(소령)이 영내 BOQ 간부 모두 집합시켜 간부의 자부심이 어쩌고 저쩌고 일장 연설을 한 뒤 주말에 외출 통제를 하네 마네 갈구고 청소를 시킨다. 그리고 한 달만 지나면 다시 시궁창으로 복귀.

소위 때 본부대장에게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한마디 했다가 본부대장에게 씨알도 안먹히고 중위 선배들에게 핀잔만 들었다. (사단급 부대에서는 내가 비록 소위라도 발언권이 있었다. 물론 소위가 소령에게 한마디 한다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은 아니지만 대대급 이하 부대에서처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내가 중위가 되어 영내 BOQ 계급 순위 상위권에 들 무렵 또다시 내무 사열 시즌이 다가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로 부임한 본부대장이 먼저 나를 찾아왔다. 영내 BOQ 간부 중에 짬 좀 되는 내 의견을 듣고자 한 것. 나보다 짬 되는 간부가 몇 명 더 있었지만 사단 실무자로서 자주 마주치는 나를 찾아온 듯 했다.

나는 두 가지 해결책을 말해주었다. 첫째, 앞으로 절대 방 문 앞에 쓰레기 봉투를 내놓지 못하게 할 것. 둘째, 수요일 점심 먹고 무조건 다 모여서 삼십분 청소할 것. 안 나오는 놈 있으면 어떡하냐고? 일단 할 수 없다. 그냥 나온 사람끼리 한다. 나중에 벌이나 상을 주던지. 매주 청소하면 사실 사람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이번 본부대장은 지난번보다 나름 민주적인 사람이라, 내가 본부대장을 통해 내놓은 대책을 두고 이놈 저놈 참 말이 많았다. 원래 사람이 모여 살면 말도 많을 수 밖에. 그럴 때 마다 본부대장은 나를 찾아왔고 나는 의견 중에 수렴할 것과 무시할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면 본부대장은 내가 말한 그대로를 실행했다.

결국 BOQ는 내가 전역할 때 까지 나름 살만한 상태를 유지했고 더 이상 내무 사열로 인한 갈굼과 주말 집합 따위는 없었다. 부대 창설 이후 십수년간 단 한 번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해결된 것이다! 나도 나지만 어찌보면 까마득한 하급자인 내 말을 경청한 본부대장의 공이 컸다.

나는 전투 병과가 아닌 행정 병과였다. 사단에서 근무하는 내가 서류 한 장을 줄이면 예하 부대 서류 100장이 줄어든다는 마음으로 행정 간소화에 힘썼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소위때 전임자 없이 맨땅에 헤딩하며 삽질한게 분해서 후배들을 실무 메뉴얼도 만들었고, 이 메뉴얼이 전 군에 퍼져 병과장 상을 받기도 했다.

뭐든 지나고 보면 이런 저런 아쉬움은 남기 마련이지만 군생활 만큼은 정말 후회없이 했다. 1년 6개월간 모셨던 참모님은 정말 좋은 분이셨다. 미숙했던 나를 한없이 포용해 주셨다. 사회에 나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애뜻하게 기억이 난다. 같이 일했던 병사와 부사관도 모두 좋은 분들이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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