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방 늙은이 예찬

본인이 여전히 젊은이 못지 않다는 심지어 어느 면에서는 더 낫다는 열정과 자부심 가지고 현업에서 뛰려는 노인을 종종 본다. 그런데 이러한 노익장은 십중팔구 다음 세대에게 민폐를 끼치는 경우가 많다.

노익장 과시하려는 노년층 대부분은 일을 A부터 Z까지 혼자서 온전히 끝내지 못한다. 일은 왕창 벌여놓고 뒷수습은 못하거나, 자신이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준비 작업을 필요로 한다.

결국 이들의 노익장 과시를 위해 다른 누군가는 길을 닦고 똥을 치워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젊은이들의 이러한 노력들을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그 중요성을 간과한다. 왜? 지금 본인이 하는 일이 너무 중요해 그 정도 희생쯤은 당연하다 여기니까.

정말 그렇다면 젊은이들도 십중팔구 흔쾌히 희생을 감수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노익장 과시하며 설치는 노장을 뒤에서 지켜보는 젊은이 마음은 답답할 때가 많다.

산초와 돈키호테

젊은이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쓸데 없는 일이나 던지니까. 그런데 어쨌든 나이 드신 어르신이니 뭐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게다가 일을 해주면 고마워하기는 커녕 지적질을 한다. 왜? 말했듯이 여전히 자기가 실무자로서도 더 낫다고 착각하니까. 지적이 옳은 것이면 다행인데, 실은 시대 변화에 뒤떨어진 것인 경우가 많다.

듣는 젊은이 입장에서 한 두번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넘어가지만, 집요하게 재차 따져 물으면 대꾸하지 않을 수 없다. 젊은이가 세살 물정을 모른다며 젊은이에게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를 하는 노인에게, 견디다 못한 젊은이가 세상 물정 모르는건 바로 당신이라고 지적하면 열혈 노장은 십중팔구 삐진다.

이렇게 노익장 괴사하는 자들의 성격은 (무례한) 다혈질인 경우가 많다. 다혈질의 사실상 유일한 장점은 행동력인데, 그나마도 고삐가 풀려있어 그저 지 꼴리는대로 심지어 가면 안되는 방향으로 상의도 없이 내달리기 때문에, 결국에는 남다른 행동력으로 거둔 얼마간의 성과마저 상쇄하는 훨씬 큰 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노익장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드물지만 분명 바람직한 노익장도 있을 것이다. 뒷방 늙은이는 도저히 하기가 싫다면, 굳이 노익장을 발휘해야 하겠다면, 몇 가지 규칙을 지키면 좋을 것이다.

노익장의 대명사 황충

첫 째, 젊은이들에게 일을 시키지 말 것. 일의 크기를 가능한 작게 줄여, 본인 일은 어떻게든 본인 스스로 시작하고 끝을 볼 것. 둘 째, 젊은이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면, 지원을 구하기 전에 젊은이들 상황을 먼저 살펴 상의를 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것. 셋 째, 젊은이에게 조언을 하려면, 본인 역시 젊은이 조언을 경청하겠다는 열린 마음을 가질 것.

그런데 이 정도로 주변과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본인은 그렇다고 착각하는 경우는 많지만. 매사 과유불급. 일을 안하는 사람 보다 자기 마음대로 열심히 하는 사람이 조직의 썩은 사과가 되기 쉽다. 그래서 나는 굳이 어설픈 노익장 과시하며 주변에 민폐나 끼치느니 차라리 뒷방 늙은이가 되시라 권하고 싶다.

뒷방 늙은이라는 말은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실세를 잃고 껍데기만 남은 초라한 신세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여겨지지만, 반대로 활력은 떨어져도 경륜과 지혜를 갖춘 인자한 현자로 볼 수도 있다. 후자 관점에서, 애먼 노익장 뽐내는 노인보다 조용하지만 현명한 뒷방 늙은이가 백배 낫다.

뒷방 늙은이에게도 그들만의 역할이 있다. 그간 쌓은 경륜을 토대로 뒤에서 보다 넓은 시야로 앞에 뛰는 젊은이들 지켜보며 거시적 방향성을 조언하거나, 인맥을 활용해 나아갈 길이 막힌 병목 지점을 뚫어주거나, 그도 아니면 재정적 후원을 할 수도 있다. 이런 기품있는 뒷방 늙은이를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무시할 젊은이는 없다. 만약 있다면 그건 정말 싸가지 없는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