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 R&D 과제의 맹점

자랑은 아니고, 어쩌다보니 주변으로부터 정부 지원 과제 전문가 취급을 받고 있다. 정확히는 숙련자 쯤 되는데, 과제 브로커 중에 실제 벤처 사업 운영 경험을 갖춘 이가 생각보다 드물어서 내가 확실히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기는 하다.

아무튼, 이런 내가 볼 때 정부 과제의 맹점은 크게 두 가지: 공무원적 사고 방식, 우물가에서 숭늉 찾기

아무래도 정부가 운영하는 사업이다보니 공무원적 사고 방식이 근간에 깔려있다. 대표적으로 1년/2년 계획과 목표 따위.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연간 계획표가 나오는 업무를 한다. 계획에서 벗어난 업무는 이례적인 이벤트 또는 사고. 하지만 벤처 기업은 정 반대. 계획이 사실상 의미가 없고, 오히려 계획대로 되는게 이상하다.

정부 지원 자금이 엄밀히 말하면 공적 자금이다보니, 정부 입장에서는 늘 감사 이슈가 있는 듯. 그래서인지 늘 성과를 만들고 측정하려고 든다. 그 성과란 다름아닌 매출과 일자리 창출인데, 제발 우물가에서 숭늉 찾지 마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정부 지원 과제의 정식 명칭은 R&D 지원 과제. 원래 기업 R&D 프로젝트는 실패를 전제로 한다. 극히 일부가 의외의 성과를 내어 미래 먹거리가 되는 것이다. 자금 지원했으니 바로 성공해서 일자리 창출하라? 이건 말 그대로 매직, 미션 임파서블.


내가 중소기업부 장관이라면 성공 사례보다 차라리 실패 사례를 최대한 모아 컨텐츠로 만들 것 같다. 초기 기업의 실수는 대게 비슷하다. 같은 실수만 반복하지 않아도 성공으로 향하는 길이 열릴 수 있다. 하지만 성공 사례는 애초에 드물 뿐더러 그대로 반복되기는 더욱 어렵다. 성공의 필수 요건 중 하나가 바로 차별화니까.

그간 몇 번의 정부 지원 사업을 받았고 부끄럽게도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스타트업 기업으로 도약할만한 의미있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내 나름의 원칙은 있었다. 정부 과제를 수익 모델로 삼지 말자, 다른 말로 과제를 위한 과제를 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정부 지원 없더라도 해야할 일이 있을 때만 지원 사업 신청했다. 진행 했던 정부 과제 모두 인생 걸고 진행한 프로젝트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심지어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요즘 내 사업이 답보 상태라 반 백수처럼 지낸다. 이런 내게 지인들은 왜 정부 사업 쓰지 않느냐 묻는다. 하긴 다른 회사 정부 과제 도와주는 판에 내 과제 못 쓸까. 사업 관점에서 지금으로서는 거의 유일한 돌파구가 맞고.

하지만 몇 번의 실패 경험을 통해 한 가지 원칙이 더 생겼다. 정부 과제 없이도 함께할 팀이 없다면 지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1년 짜리 과제 받아봐야 번거로운 행정 절차 팔로업하고 팀 관리하다보면 앞 뒤로 두 달 어영부영 간다. 그럼 사실상 10개월 짜리 사업인데,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10개월이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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