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 받은 썰

이전 직장 그만둘 무렵, 이른바 예언의 은사를 가졌다 주장하는 또래 남자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삶을 간증한 뒤 나를 포함한 예닐곱명에게 기도를 하며 예언을 해주었다. 나는 예언 따위 적극적으로 믿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기에 예언 듣기에 흔쾌히 참여했다. 그는 내 머리에 손을 얹고 방언으로 웅얼거리더니 이런 말을 했다.

"하나님께서 형제님 주변에 많은 어린이들이 둘러앉은 모습을 보여주시네요. 마치 예수님 같은 모습이에요."

내가 평소 애들 정말 좋아해서 이 말 듣고 살짝 놀랐다. 한 때 교회학교 초등부 교사를 한 적도 있는데 야유회에서 정말로 아이들한테 둘러쌓인 적도 있다. 아이들은 자기를 좋아하는 젊고 웃긴 어른을 좋아하기 마련이니까. 점을 본 적은 없지만 처음 만난 점쟁이가 나에 대한 무언가를 맞추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다.

그는 다시 웅얼거리더니 두 가지 예언을 했다.

"형제님의 꿈이 정말 크시네요. 그 꿈을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 형제님과 결혼할 자매님을 이미 예비하셨습니다."

꿈 이야기는 솔직히 요즘 말로 심쿵했다. 당시 직장 그만 두고 창업 전선에 뛰어들려는 찰라였기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관두지 않았겠지만..) 결혼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관심은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독신주의자도 아니라, 배우자를 예비하셨다는 말이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곱씹어보면 '결혼을 할 것이다'와 '결혼할 여자가 예비되어 있다'는 뉘앙스가 다르다. 단지 때가 되면 결혼을 할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내가 결혼에 관심이 없던 당시나 지금 이 순간에도 나와 결혼할 여자가 세상 어딘가에서 준비되고 성장하고 있다는 말 아닌가!

나는 겉으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했지만 속으로는 이 예언들을 꽤나 마음에 두고 있었다. (나한테 유리한 말이니까.) 그리고 나와 아주 가깝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만 살짝 이야기 하곤 했다. 특히 창업 전선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마다 나는 꿈을 이룬다는 예언이 참인지 거짓인지 남몰래 궁금해했다. 그런데 이제보니, 그 예언이 참이라 한들, 그것이 내가 소원하는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바가 있다면 어떻게든 그것을 이룰 수 있다. 나의 능력과 지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이런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는 세상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여 세상 것을 필요로하지 않으신다. 단지 그가 택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은혜를 배풀 뿐. 바울이 없었다면 기독교도 전파되지 않았을까? 아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그 일에 그를 택하여 쓰신 것이다.

하나님은 내 소원을 대신 이루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직접 일하신다. 단지 나를 도구로 사용할 뿐. 나의 상태나 상황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러니 내가 감히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설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저 주어진 현실에 충실했어야 했다. 물론 현실에 충실한 것과 안주하는 것은 다르다. 현실에 안주하는 자의 삶은 결코 개선되지 않는다. 보다 나은 삶을 살고자 한다면,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되 위대한 비전을 품어야 한다. 위험에 빠지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면, 서두르지 말고 가장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쌓아나가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좋았지만 너무 조급했고, 그래서 일상이 무너지는 위험을 초래했다.

내가 만일 창업을 하지 않고 직장을 계속 다녔더라면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 되어있을 지도. 아마 지금보다 금전적으로는 여유롭지만 조금 덜 똑똑했겠지. 하지만 나의 외적 내적 상태가 어떻건, 내가 무엇을 알고 배우고 느꼈건, 그런 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꿈을 이루신다고 계획하셨다면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어떤 모습이고 어떤 상황이건 그 꿈을 나를 통해 담아서 펼치실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일하신다.

그런데 나는 '꿈이 이루어진다'는 예언을 그저 나 좋을대로 '내가 성공한다 또는 내 소원과 계획이 이루어진다.' 따위로 해석한 것 같다. 하나님께서 직접 일 하신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좋고 위대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예언이 한낱 지나가는 헛소리였다면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것이 참이라 한들 '나의 성공'을 보장하는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정말 그 예언이 참이라면 내가 성공을 하건 아니건 하나님은 나를 통해 꿈을 이루실 것이다. 심지어 나는 그 꿈이 (나를 통해) 이루어진 사실 조차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천둥 벌거숭이 같던 나는 결국 안정된 직장을 때려치고 창업 전선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많은 것을 배웠고 또 많은 것을 잃었다. 이것이 지금의 나이며 좋던 싫던 이것을 바꿀 수는 없다. 지난 과거를 후회할 수는 있을 지언정 돌이킬 수는 없으니. 그리고 지금 나는 길을 잃었다. 믿음과 분별 모두 부족하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깨달은 바는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의 몫이 절망이던 희망이던 나의 힘 만으로는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 그렇다면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금 나는 두렵고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갈구한다! 나를 그저 불쌍히 여겨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한다. 지금까지 나의 소원 성취를 위해 살아왔다면, 이제는 그저 하나님께서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는 삶을 살길 바랄 뿐..

'신앙은 은총의 질서에 따라 모든 사물을 보며 삶을 영위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신앙인은 사실 매일 기적 속에서 산다고 자각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자들이 그런 삶을 영위해 갔다.' - 김형석 연세대 명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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