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 업무 메뉴얼의 추억

군 복무 시절 내가 만든 경리 업무 메뉴얼이 육군 전체에 배포된 적이 있다. 그 공로로 병과장 상을 받았고. 그런데 그 과정이 그저 평탄한 것 만은 아니었다.

그 메뉴얼은 당시 막 중위로 진급한 나와 말년 병장이 함께 작성하였다. 나는 복지기금 파트를 병장은 계약 파트를 집필하였는데, 솔직히 계약 파트의 퀄리티가 훨씬 높았다.

군대는 사람이 들고나는 경우가 많아 업무 인수인계가 정말 취약하다. 사실상 이등병이나 다름 없는 소위로 임관하여 고생 끝에 겨우 업무에 익숙해진 나는, 1년 빠른 전역 준비 차원에서, 그리고 내가 임지에 부임하기 전에 받았던 업무 교육은 너무 형식적이라 실무 적응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 의식을 가지고, 업무 메뉴얼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던 나는 말년 병장이 후임을 위해 쓴 인수인계서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그것을 전 군에 배포하자고 구르는 낙엽도 조심하던 말년 병장을 설득하였다. 고마우신 참모님 덕분에 나와 병장의 이름을 단 메뉴얼은 사단장님 결재를 받아 육군 중앙 경리단에 보내졌다.

업무 메뉴얼을 보낸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화가 단단히 난 중앙경리단 소속 중령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한 나 때문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무엇보다 기존 경리 업무 교육이 부실하다는 문제 의식이 맘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 너는 그렇다 치자. (저자 명단에) 병장은 또 뭐냐. 우리 경리 병과 장교단이 그렇게 허접해?"

나는 이 말을 듣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쏘아붙였다.

"아니 말씀에 어폐가 있으신 것 아닙니까? 저야 간부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이제 곧 제대할 병장이 이런걸 썼다는게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이병장은 정말 불러다가 상이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너네 참모 바꿔!"

우리 참모님 계급은 소령. 전화로 어떤 말을 들으셨을 지는 안 들어도 짐작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저 고맙고 죄송할 따름.

그렇게 안 좋은 추억으로 끝날 줄 알았던 경리 업무 메뉴얼은 결국 경리병과장님 지시로 전 군에 배포되었고, 나는 한 달 뒤 국방부에서 열린 병과의 날 기념 행사에 참석하여 상을 받았다. 상도 상이지만 전국 각지에서 얼굴도 모르는 분들의 감사 전화를 받을 때 참 보람있었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 청소를 하다 사고로 죽은 19세 청년이 계약직 용역이라는 이유로 서울 메트로로부터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소식 듣고 꼬꼬마 시절 무용담이 떠올랐다. 계약직이라면 정규직보다 더 많은 보상을 주아야 마땅한 것 아닌가 싶어서. 진짜 한국 사회는 군대랑 똑같거나 혹은 그 이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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