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호기심

기계는 답을 위해 존재하고 인간은 질문을 위해 존재한다 - 케빈 켈리 1945년 어느 날, 퍼시 스펜서는 매사추세츠 주 월섬에 있는 자신의 회사 레이시온 연구소를 둘러보고 있었다. 레이시은 2차 대전 때 연합군에 레이더 기술을 공급하던 회사였다. 그날 마그네트론(레이더의 민감도를 높이기 위해 마이크로웨이브를 내는 진공관) 옆에 서 있던 스펜서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주머니 안에 넣어두었던 초고바가 녹아 있었던 것이다. 호기심이 동한 스펜서는 사람을 보내 아직 튀기지 않은 팝콘을 가져오게 했다. 팝콘 봉지를 마그네트론 앞에서 높이 들었더니 팝콘이 튀겨졌다. 1년쯤 뒤에 레이시온은 전자렌지 특허를 제출했다. 과학적 발견의 역사는 '우연히' 이루어진 혁신적 사례들로 가득하다. 가장 유명한 것은 1928년에 알랙산더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한 이야기일 것이다. 플레밍은 배양접시에 흘러들어와 떠다니던 곰팡이가 근처에 있는 박테리아의 접근을 막고 있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하지만 스펜서와 플레밍은 그저 운이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매우 호기심이 강했던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이미 많은 지식을 축적하고 있었고 지식을 더 키우기 위한 탐구를 계속 하고 있었다. 우연이 다가왔을 때 그것을 알아보고 붙잡을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호레이스 월풀은 세렌디피티라는 단어를 처음 설명할 때 '우연과 총명함의 덕이라 표현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총명함 부분을 쏙 빼놓고 세렌티피티를 운으로만 생각한다. 초코바가 주머니에서 녹아도 우리들 대부분은 잠시 인상을 찌푸리고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또 플레밍만큼 박테리아에 대해 사전 지식이 많고 알고 싶어한 사람만이 특이한 곰팡이의 중요성을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루이 파스퇴르는 '관찰의 세계에서 행운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온다'고 말했다. 호기심은 우리가 자신이 가진 정보에서 부족한 부분을 인식하고 그것에 관심을 갖게 함으로써 결정적 우연이 찾아올 때 붙잡을 준비가 되도록 만들어 준다. 그러니까 운이 좋으려면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서점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조언한 바 있다. '서점은 기차 매표소가 아니다. 기차 매표소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서 가지만, 서점은 모호한 채로 꿈을 꾸듯이 가야 하고, 서점에 있는 것들이 자유롭게 내 눈길을 끌고 내게 영향을 미치도록 두어야 한다.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서점을 돌아다니는 오후의 오락이 되어야 한다.' 구글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하자면 위의 서점 이용법과는 매우 다를 것이다. 구글은 케인스가 말한 기차 매표소와 비슷하다. 종착지를 알고 있는 상태로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자신이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를 언제나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 구글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구글의 공동 창업자 레리 페이지는 '완벽한 검색 엔진'이란 '내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정확하게 이해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 자신도 모른다면 어쩔 것인가? "내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무엇인가?"는 그리 어려운 질문이 아니다. 우리는 DNA에 그 답의 일부를 이미 가지고 태어난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먹는 법을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을, 부모 입에서 나우는 우스운 소리들을 해독하고 점차로 따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안다. 커 가면서는 부모, 선생님, 직장 상사 등 학교나 직장에서 잘 해 나가려면 무엇을 알 필요가 있는지를 말해주는 사람이 넘쳐난다. 알 필요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면 인터넷은 거의 언제나 답을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는 더 어려운 질문이다. 이는 우리 삶에서 너무나 중요한 질문이며, 인터넷이 도와줄 수 없는 질문이다. 인터넷 초창기에 기술 예찬론자들은 인터넷을 케인스가 말한 서점이나 프랭클린이 즐겨 찾던 커피하우스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했다. 사용자들이 무작위적으로 우연에 마주치게 되는 상황을 즐기면서 예기치 못했던 연결들을 만들어 가는 장소라고 말이다. '서핑'이라는 용어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탐구한다는 의미를 반영하고 있었다. 19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의 슬로건은 '오늘 당신이 가고 싶은 곳은 어디입니까'였는데 이는 온라인 세계를 무한한 모함이 가능한 세계로 보는 개념을 포착하고 있다. 작가 에브게니 모로조프가 짚어냈 듯이, 인터넷 브라우저들의 이름(익스플로러, 네비게이터, 사파리)들은 웹을 미개척지로 보는 낭만적인 생각을 담고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모호하고 기이하든 간에 자신의 관심사를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는 곳으로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인터넷은 답을 고도로 정확하고 정교하게 배달해 주는 기계이다. 정보든, 오락이든, 소비재든, 무엇을 찾든지 간에 인터넷은 놀라운 효율성으로 그것을 제공해 준다. 요즘은 구글에 질문을 넣으면 한 번 더 클릭할 필요도 없이 바로 답을 볼 수 있다. 또 카페에서 어떤 노래를 들으면 그것을 스마트폰으로 바로 구매할 수 있다. 페이스북은 사용자들더러 원하는 것을 모두 제공하겠다며 자신의 파란 담벼락 안에 안전하게 머물러있으라고 한다. 또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인터넷 정보를 모바일 앱으로 접한다. 이는 웹에 들어가서 웹이 가진 불확실성을 감수하는 모험조차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개척지는 정착존이 되었고 황야의 마을은 에어컨 달린 쇼핑몰이 되었다. 웹 검색은 전에 없이 편리해졌다. 하지만 웹은 우리의 열망을 너무나 효율적으로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호기심을 촉발하거나 지속시켜 주지는 못할 수도 있다. 호기심을 계속해서 떠받쳐 답을 주는 것은 답이 내려지지 않은 질문들이다. 그런데 구글은 거의 모든 답을 가지고 있다. 구글은 '모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정보와 관련해서 말하자면, 구글은 우리 모두를 '무식해도 행복한' 상태, 자신이 아직 모르는 것들을 해맑게 무시하는 상태에 있게 한다. 모두가 이를 문제라고 여기는 것은 아니다. 기술 예찬론자인 로프트 스코블은 '새로운 세계에서는 페이스북을 열기만 하면 당신이 관심을 가지는 모든 것이 스크린에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호기심이 있다는 것의 의미는 아직은 관심이 '없는' 것들에 대해, 그것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기 전 까지는 관심이 있는제, 없는지 자체를 알 수 없었떤 것들에 대해 알고 싶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MIT 미디어학자 이선 주커만은 18세기식의 인쇄 매체가, 그것이 가진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 한계 때문에, 세렌디피티를 일으켜서 호기심을 잘 자극할 수 있다고 보았다. 신문의 1면은 레이디 가가의 의상 이야기에서 튀니지 혁명으로 눈길을 이끈다. 들어본 적이 없어서 사려고 마음먹어 본 적도 없는 책들로 눈길을 이끄는 데에는 아마존보다 오프라인 서점이 여전히 훨씬 뛰어나다. (최근 어느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온라인 서점에서보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배나 더 충동적으로 책을 구매한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옛 미디어는 우리의 지평을 더 잘 넓혀준다. 구글은 당신이 원하는 어떤 것에라도 답을 줄 수 있겠지만, 무엇을 물어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못한다. 정보에 더 많이 접근할 수 있께 되었다고 꼭 호기심이 넓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시카고 대학 사화학 교수 제임스 에반스는 1945년부터 2005년 사이에 출판된 3400만 건의 학술 저널 논문이 선행 연구를 어떻게 인용했는지를 분석했다. 학술 저널이 종이 인쇄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진 다음에 연구의 패턴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디지털 텍스트가 인쇄 텍스트보다 검색하기 훨씬 쉽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서, 에반스는 학자들이 연구 지평을 넓히기 위해 웹을 사용할 것이고 따라서 논문에는 더 다양한 선행 연구들이 인용되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학술 저널들이 온라인화 되면서 학자들은 전보다 더 적은 수의 선행 연구를 인용하고 있었다. 가용한 정보의 범위가 넓어지자 연구와 학문의 범위는 좁아진 것이다. 이에 대해 에반스는 구글 같은 검색 엔진이 유명한 논문을 더 유명하게 해서 그것에 빠르게 권위를 부여하고, 무엇이 중요한 논문이고 무엇이 아닌지에 대한 합의를 공고히하는 효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하이퍼링크가 쉽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면서 학자들이 종이책으로 된 저널을 넘기면서 흔히 마주치게 되는 현재의 목적과 약간만 관련이 있는 논문들을 대체로 못 보고 그냥 지나쳐 버리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온라인을 통한 연구는 도서관을 통한 연구보다 더 효율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범위가 좁았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연구의 지평을 축소시키는 효과를 내고 있었다. 지리, 문화, 언어의 장벽을 녹여버리는 웹의 능력은 많은 찬사를 받아왔다. 하지만 많은 연구에서 밝혀졌듯이, 인터넷은 지평을 넓히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지평은 넓혀 주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사람들을 더 지엽적으로 만든다. 이선 주커만은 미국 인터넷 사용자가 보는 뉴스의 93%가 미국에서 생산된 뉴스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나마 미국이 가장 덜 지엽적인 국가였다. 프랑스에서는 뉴스 트래픽의 98%가 자국 내 사이트에서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 주커만은 이렇게 말했다. '정보는 글로벌하게 흐르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관심은 매우 지역적이고 부족적인 경향이 있다.' 경제학자 페르난도 페레이아와 조엘 월드포겔은 22개국을 대상으로 1960년 이후 50년간 소비자들의 음악 구매 행태를 분석했따. 보통은 유튜브, 아이튠즈, 스포티파이의 시대이니 만큼 사람들의 음악적 취향이 더 범지구적이 되고 다양해졌으리라고 예측할 것이다. 하지만 페레이아와 월드포겔이 발견한 것은 전 세계 소비자들이 자국 음악 쪽으로 편향되어 있을 뿐 아니라 금세기 들어 이 편향이 더 증가했다는 사실이었다. 세렌디피티가 부족하면 혁신이 일어나기 어려워진다. 혁신이란 지식과 아이디어가 예기치 못하게 부딪힐 때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방식으로 동일한 정보에 접하면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연결들을 만들기 어렵다. 주커만은 투자 매니저들을 대상으로 세렌디피티에 대해 강연을 했던 경험에 대해 네게 이야기해 주었따. 처음에는 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었지만 그들은 한 마디 한 마디에 굉강히 관심을 보이더라고 했다. "금융 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이 블룸버그를 읽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동일한 정보를 보게 되죠. 하지만 그 날 투자 메니저들이 알기 원하는 것은 자신들이 속한 정보 궤도의 외부로부터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었어요" 인터넷이 새로운 정보, 다른 세계, 다른 사람들을 향해 우리의 정신을 열어주는 잠재력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문제는, 이 잠재력이 너무나 자주 건드려지지 않은 채로 지나간다는 데 있다. 앞으로는 인터넷의 잠재력을 더 잘 활용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은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 이언 레슬리 <큐리어스> 4장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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