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어스 독후감

지적 호기심에 관한 책 '큐리어스' 읽고 있는데, 초반부터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용두사미로 끝날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아직 1/3 정도 밖에 읽지 않았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것들이 좀 있어서 독후감으로 남긴다.

저자는 사람의 호기심을 다양성 호기심과 지적 호기심으로 구분한다. 다양성 호기심은 새로운 것에 대한 단편적이고 산발적인 호기심이며, 지적 호기심은 보다 넓고 깊은 수준의 지식 추구의 원동력이 되는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호기심이라는 것이다.

다양성 호기심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며 새로운 주제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는 동기가 된다. 하지만 그것이 지적 호기심으로 발전하지 않고 그저 방향성 없는 다양성 호기심에만 머무른다면 별로 쓸모가 없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

저자는 우리가 인터넷을 지속적인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이퍼 링크 문서를 열어보는 일이나 페북이나 트위터를 끊임없이 리프레시 하는 등의 행위는 단지 다양성 호기심만을 자극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저자의 문제 의식에는 상당 부분 동의한다. 내가 오랬동안 고민해왔던 것이기도 한데 이렇게 명쾌하게 정리해줘서 너무 고맙다.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면서 인터넷 컨텐츠는 정말이지 점점 더 파편화되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금방 풀리고 끝날 수수께끼가 아닌 마르지 않는 미스터리를 발견하고 쫒는 것이 진정한 지적 활동이라면, 인터넷 사이트를 휙휙 옮겨다니며 몇 시간이고 새로운 정보를 접하는 것은 분명 진정한 지적 활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적 활동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 작업 정도는 될 수 있다. 지적 호기심이 생겨나려면 우선 지식과 정보라는 토양이 마련되어야 하니까. 저자 또한 다양성 호기심은 지적 호기심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라면 '다양성 호기심과 지적 호기심' 대신 '자극, 호기심, 근성, 지혜'라는 구분을 사용할 것 같다. 산발적이건 지속적이건 무언가를 궁금해하는 것은 호기심, 자극은 호기심이 동반되지 않는 단순 자극. 무언가를 꾸준히 해내거나 스스로 목표를 정해서 그것을 이루어내는 성품은 근성, 근성의 방향성을 조절하여 보다 큰 목표나 대의명분 따위를 추구하는 것이 지혜. 물론 고갈되지 않는 미스터리는 근성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한가지 의구심이 드는 점은, '과연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다양성 호기심은 충분히 자극받고 있느냐'이다. 지금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서 자극받는 것은 호기심이라고 말하기도 뭣한 '자극' 그 자체 아닐런지. 우리는 페북 트위터를 자주 리프레시 하지만, 그저 그 뿐이지 정작 새로운 정보를 능동적으로 얻으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정보를 걸러내려고 애쓴다. 링크를 적극적으로 눌러보지 않게 된 지는 이미 오래.

초기의 웹은 지금 당장은 필요 없지만 언젠가 필요하게 될 지도 모르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능동적으로 탐색하는 미지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웹은 이제 그저 전기나 공기처럼 익숙하게 늘 우리 곁에 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능동적으로 정보를 탐색하려는 욕구보다는, 너무 많다고 느껴지는 정보들 가운데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만 골라보고 싶은 욕구가 더 큰 것 같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왕성해야할 10대들 조차 웹을 통하여 세상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경우를 나는 별로 접하지 못했다. 그저 동년배들끼리 킥킥대는 데에만 쓰는 경우가 대부분. 내가 한국에 살아서 이렇게 느끼는 지도 모르겠지만.

저자의 제안처럼 인터넷이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 또는 근성을 자극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다양성 호기심이라도 충분히 자극할 수 있다면 나는 이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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