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죽어나는건 현장 근무자

미군과 국군의 폭설 대응 방식 차이라는 한미연합사 출신 예비역의 경험담이 SNS 상에서 한참 퍼진적이 있다. 폭설이 오니까 국군은 병사들과 초급 간부만 출근하고 고급 간부들은 집에서 대기하는데, 미군은 거꾸로 사병들은 집에서 대기하고 고급 간부들이 출근하더라는 것.

사실 눈이야 병사가 쓸어도 된다. 장군이 눈 쓸면 이상하잖아 ㅎㅎ 그런데 문제는 의사 결정권. 사회에서는 눈오면 그냥 눈오나보다 하겠지만 군에서는 눈 비에 민감하다. 강우량 또는 적설량에 따라 기본적으로 취해야 할 조치가 있고, 악천후로 인한 얘기치 못한 상황에도 시시각각 대처해야 한다.

의사 결정권이 없는 병사는 유사시에 신속한 대처를 할 수 없다. 병사들은 그저 로보트처럼 규정대로만 움직일 수 밖에 없고, 규정 밖의 상황을 만나면 당황할 수 밖에 없다. 뭐라도 하면 니가 뭔데 나서냐고 핀잔듣고 아무 것도 안하면 일 똑바로 못하냐고 욕처먹는다.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다.

국군 규정집은 두껍다. 현장 근무자에게 충분한 권한을 부여하거나, 결정권자가 현장 상황을 직접 통제하지 않고, 규정만으로 모든 상황을 커버하려 들기 때문. 미군의 필드 메뉴얼은 국군보다 훨씬 얇다. 메뉴얼을 최소한의 행동 강령과 가이드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현장 지휘관 재량에 맡긴다.

그저 규정대로만 일하면 편한 점도 있다. 결정권자는 결정하지 않아도 되고 실무자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규정으로 모든 상황을 커버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정해진 규정대로만 처리하면 되는 일이라면 굳이 사람이 할 필요가 없다. 기계나 컴퓨터가 훨씬 잘한다.

답답한 기계식 조직 문화는 비단 군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하여 있다. 공무원 집단은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마저 이렇게 일하는 경우가 많다.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현장 직원은 물론이고, 나름 권한이 있는 본사 직원 마저도 규정 밖의 상황을 만나면 어찌할 바를 모른다.

나는 이른바 갑질 논란의 근본 원인이 고객의 과잉 친절 요구라고 보지 않는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대기업 조차 합리적인 문제 해결에 서투른 경우가 많다보니, 정당한 내 권리를 찾으려면 꼭 따지고 화를 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본다. 결국 나만 손해.

이렇다보니 고객은 문제만 생기면 일단 화부터 낸다. 이런 상황은 인격이 바닥인 고객이 개진상 쓰레기 짓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한다. 비합리적인 경영 시스템은 그저 현장에서 어떻게든 고객의 입을 틀어 막아주길 바랄 뿐. 결국 죽어나는건 현장 근무자. 그나마도 대부분이 계약직.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