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목표가 주는 위안

졸라 빡센 방학 시간표 짜 놓고 결국 지키지 못하고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는 누구나 한 번 쯤 겪어봤을 터. 대학생도 학기초에 수강 신청 너무 빡시게 해 놓고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 왕왕 있다. 우리는 왜 이처럼 이루지도 못할 과도한 목표를 설정해놓고 이미 예견된 실패를 반복하는가?
우선 적절한 수준의 목표를 정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지나치게 서두르거나 욕심 부리지 않고 실천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는 데에 익숙해지려면 어느 정도 훈련이 필요하다. 또한 (무의식 중에) 자기가 게으르거나 무능해서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합리화 방법 중 하나로서 일부러 목표치를 과도하게 설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수학의 정석 예제, 유제 문제만 확실히 풀어도 SKY 입학이 가능하다’는 말을 학생들에게 해 주면 학생들은 일단 매우 놀라워한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 다음 반응.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말을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한다. 겉으로는 아무 생각 없이 흐리멍텅해 보이는 학생도 실은 꽤나 똑똑하다. 내 말을 바꿔 생각하면 ‘대다수의 학생들이 SKY 근처도 못 가는 이유는 수학의 정석 예제, 유제 문제 조차 제대로 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뜻이 된다는 것을 대번에 눈치 채는 것이다.
과업의 범위가 명확해지면 성취를 이루기 쉬워짐과 동시에 실패의 원인 또한 명확해져서 변명의 여지가 없어지고 만다. 내 말을 듣기 전에는 ‘수학은 원래 졸라 어렵고 할 것도 너무 많아. 그러니 내가 수학을 못하는건 어쩌면 너무 당연해. 내 주변에도 못 하는 녀석들 천지잖아? 내가 잘못된게 아니라 이런걸 잘 하는 놈이 이상한거야!’ 같은 합리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내 말을 받아들이면 달성할 목표의 범위가 명확히 좁혀진다. 따라서 실패는 온전히 자기 탓이 되고 만다. 다른 그 무엇도 탓할 것 없이 실패의 원인은 오직 자기 자신의 나태함 또는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스스로의 공부 방법일 뿐인 것이다.
누가 그러더군. 인생은 자존감을 지키려는 치열한 싸움이라고. 우리는 때로 성취보다 실패하지 않는 쪽을 선택을 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 행여 실패하더라도 적어도 실패의 원인이 나에게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변화하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게 아닐까?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