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도 못하면 가만히 있어

어버이날 맞이하여 부모님들께 자녀들로부터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여쭤봤더니 바로 '알지도 못하면 가만히 있어!' 라고 한다. 이 설문 조사 거의 매년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결과도 거의 매년 그대로인 듯. 그렇다면 자녀들은 부모님들께 왜 저런 말을 할까? 자녀들이 부모님을 무시해서? 싸가지가 없어서? 정답은 이미 문제 안에 들어있다. 자녀들이 부모님께 저런 말 하는 이유는 바로 부모님이 자녀에 대해 '정말 잘 모르기' 때문. 사실 무언가 잘 모르면 그저 가만히 있는게 가장 현명한 처신이기는 하다. 옛말에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했다. 성경(잠언)에도 '무식한 사람 조차도 입을 닫고 있으면 뭔가 아는 것 처럼 보인다'고 나온다.

그렇다면 부모는 왜 자녀에 대해 잘 모르는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별로 알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왜 알고싶지 않을까? 바로 대부분의 한국 부모는 자기 자녀와 자녀가 사는 세상에 대해 이미 잘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 이미 잘 안다고 착각하는데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 턱이 없다. 이렇다보니 많은 한국 부모는 자녀에게 진심어린 관심을 기울이기 보다는 자기 욕망을 자녀에게 투영하고, 부모와 자식 사이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져간다.

그렇다면 부모는 왜 자녀와 자녀가 살아가는 삶을 잘 안다고 착각할까? 첫째,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라고 여기기 때문. 자녀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얼마나 많은 대화를 하나? 한 지붕 아래 산다지만 안 방과 자녀 방 사이에는 만리장성 같은 심리적 장벽이 있지는 않은가? 자녀와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대화 자체가 잘 되지 않는다고? 자녀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오로지 설교만 하려고 드니 당연히 대화가 안되지.

둘째, 부모가 살아온 세상과 자녀가 살아갈 세상은 다르기 때문. 현대 사회는 그야 말로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 빨리 변해갈 것이다. 따라서 부모의 인생 경험을 자녀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그런데 부모는 자신의 인생 경험만을 가지고 자녀의 삶을 판단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물론 세상이 변하더라도 변치 않는 가치와 경륜은 존재한다. 하지만 보통 어른들은 자신의 연륜은 과대평가하고 세상의 변화는 과소평가한다. 이렇다 보니 부모가 가진 지혜는 부모의 무지와 편견에 막혀 자녀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지나치게 부모 중심으로 왜곡된 유교의 효 관념도 한국 부모의 권위주의에 한 몫 한다. 효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강조되는 기본 덕목지지만 유교에서 특히 강조된다. 유교적 효 관념의 끝에는 바로 왕이 있다. 유교는 본래 왕 중심의 사상. 유교적 윤리관의 핵심인 '군사부일체'는 아버지와 스승과 왕을 한결같이 잘 섬기라는 말이지만, 왕을 섬기는 연습을 스승과 부모를 섬기면서 하라는 뜻도 있다. 유교 사상이 무조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왕 중심 사상이니 만큼 때로는 지나치게 권위주의로 흐르는 맹점도 있다는 것이다. 

유교 경전은 '부모는 죄 지은 자녀를 관청에 신고해야 하고, 자녀는 부모의 죄를 숨겨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처럼 유교의 효는 경애를 넘어 절대적 충성과 복종으로 확장된다. 또한 이미 장성하여 늙어가는 자식이 부모를 기쁘게 하려고 어린아이처럼 굴었다는 노래자의 고사도 있다. 노래자의 부모 아끼는 마음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현대 관점에서 이를 바람직한 부모 자식 관계로 보기는 어렵다. 부모는 장성한 자녀 뒤에 서는 연습도 해야 한다.

유교 문화권에서는 부모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 조차 터부시 하는 경향이 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 은혜를 강조하는 사람은 많은데, 부모님께 이렇게 험한 세상에 왜 굳이 나를 낳았느냐고 질문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 세상 그 어떤 것이라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고인 물은 결국 썩듯이 아무리 고귀한 것이라도 비판이 없으면 변질되고 만다. 본질에 접근하려면 때로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필요도 있다. 대한민국 부모의 자녀 사랑은 유별나다. 하지만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의도가 좋다고 반드시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니까.

한국 부모는 자녀를 위해 정말 많은 것을 희생한다. 이러한 희생의 대부분은 자녀가 학교 공교육 과정을 성실히 이수하는 데에 할해된다. 자녀를 대학에 보내고 나면 자식 다 키웠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 공교육 과정이 지식 정보화 사회를 살아갈 학생들의 성장 발달 과정에 끼치는 악영향을 생각하면 그저 안타까울 뿐. 다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부모들이 애써 자녀를 망치고 있는 샘. 입시 지옥 속에서 자녀가 치르는 고초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자녀 입장에서는 부모의 희생이 참 고맙기는 한데 그렇다고 자신들도 그닥 행복하지는 않은 애매한 상황. 양 쪽 모두 희생하는데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희생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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